연꽃의 글쓰기/연꽃의 3줄 글쓰기

11월 2일 글쓰기 <필연>

연꽃의 집 2020. 11. 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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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늦은 저녁, 채비를 하고 산책길을 나섰다. 비가 왔던 것일까. 바닥은 젖어있고 공기는 꽤나 상쾌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마스크를 조금 내려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셔본다. 습하기도 하고, 제법 쌀쌀해진 기운이 코를 통과해 가슴속 저기 아래까지 닿는다. 

 

저기 저 멀리 경비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인다. 낙엽을 쓸고 계신 모양이다. 몇 시간 전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비가 나무를 흔든 것이 분명하다. 

인도에는 온통 갈색 잎들도 뒤덮어져 있다. 

쌓여있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 했던 고민과 걱정의 더미인 것만 같았다. 

비가 내린 후 낙엽이 쌓인 모습

 

어떠한 일로 인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버린 그것들은 가슴속의 자리를 전부 잠식한 것 같은 느낌이다. 

가을이 되면, 마른 잎들은 순서대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수백개의, 어쩌면 천 개가 될지도 모르는 잎사귀들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는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아마도 겨울이 지나 봄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마지막 잎새는 영광스럽게 낙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필연처럼, 잎이 떨어져 낙엽이 되는 일은 마치 운명처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아직은 색이 예쁜 낙엽들

 

고뇌란 것은 인생에 필연처럼 뒤따르는 존재이다. 
나는 얼마나 내 마음 속의 길을 쓸어주고 있었던 걸까. 

너무 오랫동안 빗질을 쉬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오늘은 마음 먹고 빗자루를 들어 경비 아저씨의 저 뒷모습처럼 조용하게 빗질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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