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8

12월 12일 글쓰기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오랜 만에 일기예보에 나오는 비 소식. 정말 비가 오려나? 하루 종일 우울한 회색 빛의 하늘은 금방 비를 쏟아낼 기세였던 것 같은데, 결국 비는 내리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책가방 속에 항상 우산을 넣어 다녔다. 엄마는 집에 계셨지만, 비가 오는 그 때 마중나오지 못 할 것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는 날에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대학 시절 함께 수업을 듣던 친한 친구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수업을 땡땡이쳤다. 비가 오는 날은 그녀가 결석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 학교 안 와?” “응, 비가 와서...” 성인이 되어 좋아했던 그 사람과 광안리 바닷가의 창이 커다란 까페에서 함께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부산이 낯선 나에게 기꺼이 창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내게 양보했던 ..

연꽃의 에세이 2020.12.13

12월 9일 글쓰기 <해질녘>

뉘엿뉘엿. 나는 뉘엿뉘엿이라는 단어가 가진 느낌이 좋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하루의 고단함를 잠시 접어두고 집에 갈 시간.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이 지난 노래가 이토록 감성적인 시간.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오전 6시와 오후 6시의 공기는 확연히 다르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른 아침. 덜 깬 잠을 커피로 쫓아야 하는 시간. 오전 6시. 힘들게 보낸 하루의 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퇴근 시간. 노트를 덮을 시간. 오후 6시. 오늘따라 해는 눈이 부시도록 벌겋다. 눈을 비비고서야 쳐다볼 수 있을 만큼. 폭발하듯이 열을 내는 주황의 빛깔은 정오의 노란 해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오후 6시의 해와, 오후 6시의 시간이 좋다. 마음은 차분해졌..

연꽃의 에세이 2020.12.09

11월 18일 글쓰기 <고향길>

고향길 하얀 아카시아 꽃. 옆에는 또 하얀 아카시아 꽃.달디 달은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어느덧 발걸음은 학교 정문 앞에.초록잎을 하나씩 따며 시끌벅적 놀이를 하다 보면,어느새 발걸음은 집 대문 앞에. 저 편 너머 무섭도록 큰 개가 짖는 소리.리듬을 타는 듯 지저귀는 새소리.달콤한 꿀을 빠는 꿀벌의 소리.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을 동생과 손을 잡고 걸어 본다. 아득해져 버린 고향길.희미해져 버린 집으로 가는 길.

11월 9일 글쓰기 <노을>

하루 종일 애를 쓴 태양은 이제 밤에게 자리를 내어 줄 시간이다.폭발하듯 쨍쨍하던 에너지는 점점 사그라들고, 이네 오렌지 빛으로 하늘을 서서히 물들인다. 수고로이 하루를 보내고, 찬란하게 떠나는 마음. 편안히 잠들고 따뜻한 휴식을 가질 시간.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보게 되는 하늘. 오늘도 수고했다고, 오늘도 고생 많았다고,그렇게 건네받는 위로같은 풍경.

연꽃의 에세이 2020.11.09

11월 9일 글쓰기 <걷기>

걷기 올해 여름은 꽤나 시원했다. 봄이 막 지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문득 더 이상 운동을 미루지 않기로 다짐했다. 편안한 추리님 바지와, 느슨한 티셔츠를 걸쳐 입고 집 밖으로 나셨다. 아, 몇 해 전 사두었던, 새 것 그대로인 러닝화도 꺼내 신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밖은 여전히 환하다. 딱히 정한 코스가 없어 동네 한 바퀴를 일단 걸어보기로 한다. 첫날, 네 바퀴를 걸었다. 나는 몸이 아플 때나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는 한은 매일 한 시간씩 걷기 시작했다. 사실 첫날은 그저 산책 정도였다. 걷기 싫었지만, 그런 마음을 억누르며 걸었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마침내 다섯 바퀴까지... 꾸준하게 걷고 또 걸었다. 꽤 오래전의 나는 별을 보고 출근했다가, 달을 보고 퇴근했다. 각박하고 ..

연꽃의 에세이 2020.11.09

11월 9일 글쓰기 <아버지의 삶>

아버지의 삶 매일 저녁 동네 입구에 찾아오는 작은 트럭을 가진 두부 장사 아저씨는 오늘도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저씨를 두부 장수라고 부르지만. 아저씨는 두부만 파는 것은 아니다. 콩물도 팔고, 두부 스낵도 팔고, 콩과 들기름도 있다. 아저씨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가지런한 물건들을 다시 한번 정렬하고, 또다시 가다듬는다. 잘 정돈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대형슈퍼가 편한 사람들에게 이 작은 트럭을 찾는 일이 되려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그저 아저씨를 찾는 경우라면, 깜빡했던 두부를 퇴근길에 살 때가 아닐까. 개시한 지 몇 시간 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저씨는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두부장사 아저씨의 머리는 하얗게 샜다. 오늘은 얼만큼 팔..

연꽃의 에세이 2020.11.09

11월 2일 글쓰기 <필연>

늦은 저녁, 채비를 하고 산책길을 나섰다. 비가 왔던 것일까. 바닥은 젖어있고 공기는 꽤나 상쾌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마스크를 조금 내려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셔본다. 습하기도 하고, 제법 쌀쌀해진 기운이 코를 통과해 가슴속 저기 아래까지 닿는다. 저기 저 멀리 경비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인다. 낙엽을 쓸고 계신 모양이다. 몇 시간 전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비가 나무를 흔든 것이 분명하다. 인도에는 온통 갈색 잎들도 뒤덮어져 있다. 쌓여있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 했던 고민과 걱정의 더미인 것만 같았다. 어떠한 일로 인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버린 그것들은 가슴속의 자리를 전부 잠식한 것 같은 느낌이다. 가을이 되면, 마른 잎들은 순서대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10월 23일 글쓰기 <밤 풍경>

이제 제법 저녁 공기가 쌀쌀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밤 산책을 나서 본다. 엄밀히 말하면 운동이지만, 오늘은 걸음을 조금 늦춰 본다. 어둠이 하늘을 잠식한 시간이지만, 하늘은 여전히 푸른 기운을 내뿜는다. 오늘 밤에는 손톱 달이 떴다. 쩌렁쩌렁 비추는 가로등 불빛보다, 달은 고요하고 황홀한 빛을 낸다. 아파트는 이에 질세라 화려하게 밝혀지고, 미처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한 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밤. 밤의 정취에 젖어 말랑해진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10월 20일 하루 3줄 글쓰기 <갈대>

보랏빛과 핑크빛의 오묘한 조화.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아. 이 순간을 잊지 않고자, 얘쁜 모습을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그렇게 다들 카메라의 셔터를 바삐 눌러댔어. 매년 딱 이 맘때쯤에만 볼 수 있다는 아름다운 핑크빛 갈대. 북적한 인파의 소용돌이 속을 뚫고 들어갈 용기가 못내 없어서,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았지. 내 눈에, 내 가슴에, 그렇게 실컷 담아서, 그래서 나는, 나는 괜찮아.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니까.

10월 13일 글쓰기 <파도>

바다를 보러 간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현재의 어지러운 상황을 이유로 꼼짝없이 집에서 보내게 된 시간이 많아진 요즘, 가슴이 점점 답답해져 옴을 도대체가 어찌할 수가 없어, 무작정 출발해 보기로 했다.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지만, 미처 슬리퍼나 수건 같은 것을 준비하지 못해 그저 저만치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조심히 물러남을 반복하였다. 고뇌를 밀려가는 물결에 실어 보내려했지만, 파도는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또다시 고뇌를 밀어 보낸다. 하지만 파도는 다시 내게 온다. 끝이 없는 반복의 연속이다. 그렇게 놓고 오고 싶었던 고민은 해결되지 못 한 채,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날 괴롭히던 머릿 속 묵직함은 깃털이 되어 바닷바람을 타고 가볍게 날아간 것이던가. 그래서 훨씬..